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9. 19世 〉5. <요재공>안곡공휘학겸행록(安谷公諱學謙行錄)
1. 문헌 목록 〉19. 19世 〉7. <요재공>이로재기(履露齋記)
1. 문헌 목록 > 19. 19世 >  
6.<요재공>농암공휘경열행록실기(農庵公諱慶烈行錄實記)
農庵公諱慶烈行錄實記 有子曰君子務本本立而道生士之爲學以德行爲先猶制生之務農爲本必有忝稷菽栗爲之甕飡然後芻豢之味薑桂之薤論其饌具焉若其文藝末技之徒尚則雕花之花葉不根之蔓果終非造化翁本然之眞妙也雖以造聖之極功必資蒙養爲本故鄒夫子誨人之語曰堯舜之道孝悌而己吾於鄉黨間本原地得農庵趙公焉公諱慶烈字雲甫農庵其號也自幼齡天資清直孝友純至清寒世業勤儉操守賃傭供親下邳之江革終身食力汝南之徐孺子也壯年衰年不辭窮執之勞饒其親厨之奉甚至未貫盈之錢漸以積殖買得宗土十數斗地以爲先壟辦香之資且其宗黨間窮孤之年長未娶者每爲周規折矩捐躬補彼助其資裝而使之室家者三數矣凶年熾疫族黨之滿室僵尺人皆畏染相避而獨公之夫妻辦其家匧所儲布匹躬自撫柩擧輛成葬焉惟其平日敬祖敦睦之意罔非本身上考 悌中流出而在其篤修堅志擧其一二可以十百推焉秉心如此操業如彼眞可爲一鄉之楷範也配夫人韓氏以孝婦著於鄉里其内姪李濟憲撰行蹟可謂有是夫有是婦也趙氏始祖諱璋高麗光祿大夫檢校門下侍中再傳至諱元吉號農隱恭讓朝克復宗社之勲賜爵大匡輔國光祿大夫玉川府院君謚忠獻是生諱瑛號樂齋典工判書書雲觀副正累傳至諱淵以文學官至泰仁縣監盖公之以上著祖也簪纓其也儒 學其業爲南土巨族至公之身傳嫡有守如右畧記之 月城 李在淳 농암공휘여행록실기(農庵公諱慶烈行錄實記) 유자(有子) 가로되 군자는 근본을 힘쓰고 근본이 서면 도가 생한다 하였으니 선비의 하는 학문이 덕행으로써 먼저하고 오히려 생을 마를 농사를 힘써 근본을 삼아 반드시 기장 피콩 서숙으로 아침저녁 식사를 한 연후에 소멤소 도야지 고기의 맛과 생강 계피의 양념으로 그 찬수를 의론할 것이니 그 문에 재주를 자랑한 무리가 숭상하야 아로 새긴 꽃잎과 뿌리 없는 넌출은 과연 끈내 조화옹의 진묘가 아니로다. 비록 조화옹과 성인의 극치한 공력으로도 반드시 교양을 근본 삼은 고로 맹자(孟子)님이 사람을 가르친 말에 요순의 도는 효도하고 경경한 데 있다 하였다. 내가 향당 간본원시에 농암조공을 얻었는데 공의 휘는 경열(慶烈)이요 자는 운보(雲甫)며 농암은 그 호였다. 어려서부터 하늘에서 타고난 자 질이 맑고 곧으며 효도와 우애가 지극하고 맑고 천세업을 근검으로 가지고 지키니 품을 팔아 어버이를 공양한 하비의 강혁(下邳之江革)과 몸이 다하도록 힘써 먹은 여남의 서유자(汝南之徐孺子)였다. 장년쇠년 공히 몸소 노력하야 봉친할 주방을 풍요하게 하고 적은 돈을 점차 식이하야 종토 十여 두락을 사서 제전을 봉하였으며 또 그 종당간에 궁하고 외로운 자가 장성하야 취처 못 한 자를 가려 자장을 도와 실가를 갖추게 한 것이 수三인이었다. 흉년 염병에 방에 가득한 족당의 시체를 사람이 다 전렴될까 두려워하야 서로 피하는데 공의 부처는 그 집에 싸둔 포필을 내서 염습하야 널과 상여를 갖추어 장사하였으니 오직 그 평일에 선조를 공경하고 종족 간에 돈목한 뜻이 본디 자기 몸 효제 중에서 흘러 나온 것이 아님이 없고 그 독실이 닥고 굳은 뜻은 그 하나 둘을 들어가히써 十百을 미루어 알겠도다. 마음가짐이 이와 같고 업을 조종함이 저와 같으니 참으로 한 고을의 규범이 되리로다. 배부인 한 씨(韓氏)는 효부로 향리에 저명하야 그 내질 이제헌(内姪李濟憲)이 행적을 찬하였으니 가히 이지아비에 이지어미라 일으것다. 조 씨 시조 휘 장(璋)은 고려 광록대부 검교문하시중이요 三전하야 휘 원길(元吉)의 호는 농은인데 공양조(恭讓朝)에 종사를 극복한 훈공으로 대광보국광록대부 옥천 부원군을 사직하고 시호는 충헌이며 생휘 영(瑛)의 호는 요재요 전공판서 서운관 부정이고 여러번 전하여 휘 연(淵)은 문학으로써 벼슬이 태인현감이 되었으니 대개공의 이상 명조였다. 고관대작을 그 대대로 유학을 그 업으로 하야 남토거족이 되었고 공의 대에 일으도록 바르게 전하여 지킴으로 위와 같이 대략 기록함. 월성(月城) 이재순(李在淳)
 
1. 문헌 목록 〉19. 19世 〉5. <요재공>안곡공휘학겸행록(安谷公諱學謙行錄)
1. 문헌 목록 〉19. 19世 〉7. <요재공>이로재기(履露齋記)